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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사진의 미학적인 의미

글: 김영태 / 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사진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세기에  사진이 발명된 이후에  가장 널리 이용된 분야 중 하나가  초상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서양근대사회에서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부상한 부르주아가 과거에 왕이나 귀족이 누렸던 것 같이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서 초상화를  남겼다. 이 시기에 초상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사진이 발명되면서 회화의 이러한 역할을 계승했다.

사진은 이외에도 신분증에도 부착되었고,  범죄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이후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포토저널리즘

전성기엔  수많은  포토저널리스트들이 유명인들의 초상을 남겼다. 또 20세기 초반의 독일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는 당시의

독일민중을 계급, 직업별로 분류하며 사회과학적인 시각으로 그들의 인물사진을 찍었다. 그 후 1960년대엔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사람들(기형인, 거인, 쌍둥이, 누디스트)의 포츄레이트를 찍었다. 작가는 그들을 찍은 인물사진을 통하여 정상과 

비정상의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인물사진은 모델의  개성이나 내면세계를 표현하거나 사회적인 관점에서 기록한 사진으로 분류 할 수 있다. 사진의 기계적인 기록성과 사실성을 바탕으로 인물의 존재를 재현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사진은 어떠한 측면에서는 존재의 증명이자 부재의 증명을 위한 수단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또한 인물사진은  사회적으로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이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출발하여 사회적인

표상表象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에 <千人譜: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이라는 표제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사진가 김광안은 종로구에 있는 종묘공원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영정사진무료봉사를 했다. 종묘공원에 나와서 소일하는 노인들은 대부분 연령대가 70대 이상이다. 현재 70대 이상 노인들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격동기를 겪은 세대이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에 출생하였고, 혹독하고 암울한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 정치, 사회문화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다. 또한 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고도경제성장, 10월 유신, 5.18 군사정변, IMF 외환위기,

반세기만의 여야 정권 교체 등 한국현대사의 여러 역사적인 변혁과 사건을 겪으면서 노년기를 맞이한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의 가장

격변기를 몸으로 체험한 세대라는 의미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시대를 겪은 비슷한 연배의 노인들의 초상을 찍었다. 최대한 근접하여 얼굴을 찍었는데,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사진의

용도는 영정사진이다. 그래서 모델의 표정과 피부가 디테일하게 재현 될 수 있도록 클로즈업하여 촬영을 했다. 그 결과 모델의 삶이 스며져 있는

얼굴표정이 리얼하게 재현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무명씨로서 격동하는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을 지켜보며 험난한 삶을 살았다는데, 그것을 관상을 통하여 짐작 할 수 있다.

작가가 찍은 사진에 담겨져 있는 인물들은 표정에서 드러나는 정보와 현재의 모습을 통하여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대략적이나마 짐작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삶과 관계없이 현재는 그다지 특별한 감정적인 역동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애초에 모델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거나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사진가로서 오랫동안 터득한 사진기술이 유효적절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에 모델의 표정이 세밀하게 재현되어 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가 선택한 표제처럼 이번에 작가가 전시하는 인물사진은 우리네 삶의 마지막 단계를 가감 없이 재현한 최종결과물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70 여 년 동안 지구촌 어느 나라보다도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빠르게 변모하였고 많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발생했다.

사진가 김광안이 기록한 인물사진의 모델들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격동기를 살아왔는데, 작가가 재현한 인물사진은 사진 한 컷 한 컷

마다 모델의 표정에서 이들이 살아온 시대의 상처와 흔적이 느껴진다.

 

사진은 지시적이고 어느 미디어media보다도 시각적인 매체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것, 보이는 것만 재현하지 않고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것을 재현하는데도 일정한 영역까지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작가의 작업도 사진의 표현매체로서의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모델의 표정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느낌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내밀한 상처와 삶의 질곡이 현시顯示되어 보는 이의 감성을

매혹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에는 주류의 삶이 역사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동시대는 과거엔 역사가 아닌 것들이 역사가 되고 있다. 즉 역사가 주류만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익명의 민초의 삶도 역사로서 기록되고 있다. 작가가 기록한 무명의 노인들의 초상도 이번에 전시가 됨으로써 또 다른 층위에서

역사로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사진가 김광안이 기록한 무명씨의 초상사진은 비주류의 역사가 아닌 격동기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지켜본

역사의 증인에 대한 기록으로서 또 다른 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대의 특정한 역사적인 장면에 대한 기록의 다름 아니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민주적인 매체로서의 사진의 미학적인 매력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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