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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기획하며


서울 도심에 있는 종묘공원에서 지난 2014년 가을부터 2015년까지 2년에 걸쳐서 길거리사진관을 차리고 천여명 그곳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찍어 드렸습니다. 잘 아시다시피종묘공원은 옛 파고다공원과 탑골공원에 이어서 노인들의 자생적 만남의 광장이자

쉼터로 널리 알려져 종삼의 마지막 명소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왜 마지막이라고 말씀 드리는가 하면 탑골공원 경우와 마찬가지로 종묘공원도 공원의 성역화작업으로 널찍하고 쾌적한 환경이 조성 되었으나,

막상 노인들의 쉼터로서 공간적 배려나 편의시설 등이 마땅치 않아 평소 하루에 몇백명 이상씩 드나들던 유동인구가 요즘은 거의 반 토막으로

줄었고 앞으로도 이런 감소 추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조차 밀려나 정처 없이 도심을 떠도는 유랑민의 애환이 이 시대의 사라져가고 있는 노인문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는

점에서 이들의 초상이 역사 속에 기록되고 보존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개인의 기록이 사회의 기록이 되고 사회의 기록은 곧 역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회에서 소외되고 잊혀져가는 이분들의 초상을 기리고자 사진전 ‘千人譜: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시의 기본 방향은 이번 전시의 경우 노인문제의 시대적 코드나 사회문화적 타이폴로지등 객관적 거대담론을 다루는 서사적 구성이 아닌,

서정적인 프레임 안에서 관람자 개인의 감성에 호소하는 ‘얼굴로 보는 인생풍경전’으로 컨셉을 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전시될 사진들이 본래 영정사진으로 찍은 것이기에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분들은 사진 속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오.....나를 잊지는 말아요!’

이렇게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단한 한평생 인고의 세월을 어렵사리 헤쳐 온 이분들 한분 한분의

꾸밈없고 진솔한 얼굴 표정에서 그만이 살아낸 인생풍경을 유추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전시를 꾸려보려 합니다.

 

만약 이 전시를 보시고 우리 시대의 상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아마 상혼을 치유하기에 앞서 같이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고심한 끝에 주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사진과 더불어 영상을 전시에 적극 도입하기로 하였습니다. 대형화면에서 실물보다 훨씬 큰 영상을

구현함으로써 얼굴이 아닌 낮선 풍경처럼 보이게 만들기, 의표를 찌르는 영상과 사진의 다양한 입체적 배치 그리고 영상의 점멸을 통한

얼굴로의 시선집중 그밖에 사진의 은유적 텍스트로서 시와 사진의 접목을 시도 하는 등 이종 매체간의 다양한 콜라보를 전시장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다만 오셔서 구경하시고 아주 오래전 선사때 부터 여러분 각자의 DNA에 갈무리 되어온 마음속 공감력(力)을 불러내시기만 하면 됩다. 

그리하여 전시장에서 만나는 얼굴들에서 기쁨 애수 부재 무의미 절망 죽음 등 파토스(pathos)를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런데 전시를 기획 하던 중 반가운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날만큼 기뻤습니다.

그것은 ‘서울역사박물관’이 이분들의 초상사진 천여점의 아카이브를 소장한다는 통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천인보’가 2017년 3월 9일자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단 하나 남겨진 숙제, 그것은 언젠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종로편을 가지고 ‘기획전시’할 때, 종로 일대의 고증과 더불어 역사의 큰 흐름속에서 ‘천인보’가 이 시대의

취약계층인 노인들의 애환과 생활상등 인물이 숨쉬는 시대적 서사에 얼마나 기여할지가 궁금 합니다.

​작가 김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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